머슴살이를 하더라도 대감댁에서 하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이 말은 출판 업계에는 쉽게 적용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 업계에서 출판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환경은 언급되어 온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닌데요, 이번에는 열악하다 못해 경악할 일이 드러났습니다.
출판 노조는 지난 12월 1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 처리 결과를 공개하면서 무려 노동자들을 위해 죽어간 청년 전태일을 기리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자유와 양심의 시인 김수영 정신을 기리는 상을 제정한 출판사에서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참담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전태일 책 만들지만 근로기준법 적용받지 못한다 말 사실이라니", 미디어오늘, 2023-12-21)
🛑 무슨 법을 어겼길래요?
하나도 아니고 근로기준법 17조, 48조, 96조 등 두루 어겼습니다.
특히 한 출판사는 노동자가 지각할 경우, 분 단위로 월급에서 차감하는 ‘무급처리’를 해 노동청이 유연근로제 도입을 권고했습니다. 이 회사는 또 사내 임직원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사내에 대장을 돌려 사원별로 부조할 금액을 적게 해 월급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공제하고 있어 노동청이 시정하도록 했다고 해요. (‘지각비’ ‘경조사비’ 월급 차감···‘전태일 책’ 만들면서 근로기준법 위반, 경향신문, 2023-12-22)
⛈️ 여전히 열악한 출판 업계 노동 환경
출판노조협의회에서 진행한 ‘2023년 출판노동 요구안 설문조사’에 따르면 출판노동자들은 18%가 최저임금이나 그 미만의 월급을 받고 있고, 포괄임금제를 적용 받아 야근수당 등의 가산수당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는 81%에 달한다고 해요. 출산과 육아휴직을 보장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절반(48.7%)에 육박했습니다. 일부 출판사들의 내로남불은 하루이틀 보는 게 아니지만 적어도 근로기준법을, 출판 노동자들을 지켜줬으면 합니다.
한국의 출판사 수는 현재 7만 곳이 넘습니다. 하지만 영세한 출판사가 많다 보니 노조가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요. 많은 출판노동자들은 환경이 열악해도 책을 사랑해서, 또는 어떤 소명 의식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출판인 노동조합이 생겨난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출판 업계의 중요한 한 축인 작가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 출판업계에서 작가 노조를 추구하면 안되는 걸까
작가에게는 최저임금이 없습니다. 하물며 고용관계도 없죠. 책을 내고 싶어도 을의 입장이기에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잡지에 글을 실어도 원고료가 아닌 잡지 몇 부로 해결하려고 하는 몰상식한 곳도 많고요. 결국 작가들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다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다른 일을 하느라 결국 쓰고 싶은 글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보니 최근 작가들이 스스로를 노동자로 정의하고 노조 설립을 선언했습니다. 아직은 노조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의 단계지만, 작가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동조합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근로계약 없이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작가들을 어떻게 ‘노동자’로 엮어낼지는 큰 숙제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할리우드에서 미국의 작가 노조인 미국작가조합이 파업을 선언하면서 AI로 부터 창작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력과 노동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글쓰기라는 낭만에 가려진 착취···작가들, ‘노조’를 선언하다, 경향신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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